1995년 3월 19일, 마이클 조던은 기자회견이나 성명서 발표 없이 매체에 팩스 한 장으로 야구계 은퇴, 농구계 복귀를 선언해 세계 농구팬들을 다시 가슴뛰게 만들었다.
당시 그가 보낸 팩스에는 딱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I'M BACK.”
어느덧 25주년을 맞은 조던의 ‘첫’ 복귀는 무너져가던 시카고 불스 시대를 다시 일으키고, 리그를 다시 시카고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든 시작점과도 같았다.
조던이 야구를 그만둔 이유
1992-1993시즌은 조던에게 악몽과도 같았다.
거액이 오고간 내기 골프부터 시작해 각종 스캔들이 조던을 쉴 새 없이 괴롭혔고, NBA를 비롯해 팀 내부적으로도 조던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다.
마음 놓고 숨 쉴 공간이 부족해져만 갔다. 우여곡절 끝에 피닉스 선즈를 꺾고 3년 연속 우승을 차지, 자신이 여전히 농구계 최고 선수라는 것을 입증했지만 마음은 지쳐만 갔다.
조던이 종종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웠던 BJ 암스트롱은 언젠가 “조던 스스로 농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잃었다고 느낀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 시작이 바로 그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여기에 불을 붙인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조던이 늘 기대왔던 부친의 사망이다.
강도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하면서 조던은 정상 도전에 대한 의지를 잃게 됐고, 급기야 농구계 은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1993년 10월 6일의 일이다. 당시 국내 스포츠신문은 물론이고, 세계 유수 언론들이 헤드라인으로 조던의 은퇴를 다루었다.
조던은 미련이 없어 보였다.
스스로 “이룰 건 다 이룬 것 같다”고 말했고, 실제로도 이를 부정할 만한 이들은 없었다.
우승, MVP, 득점왕, 금메달, 그리고 거대 후원계약까지. 농구선수로서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력서에 넣었으니 말이다.
조던은 프로야구선수에 도전했다.
야구선수는 그가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목표 중 하나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에 실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구단주 제리 레인스도프와의 인연 덕분에 시카고 화이트삭스에는 입단했지만,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광고 및 후원 계약으로만 연간 3,000만 달러씩을 벌던 선수가 월 850달러, 하루 식대 16달러로 생활하는 마이너리거가 됐던 것이다.
그렇지만, 야구선수로서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근면성실함은 모두가 인정했다. 야구를 할 때도 새벽 6시에 나와 개인 훈련을 했다.
승부욕도 여전히 강했고,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은 “질문도 많고 훈련도 정말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슈퍼스타 출신이지만 동료들과도 원만히 지냈다.
그러나 서른이 넘은 그가 메이저리그 타석에 들어설 정도로 성장을 이룰 것이라 보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게 힘겹게 꿈을 쫓던 와중에, 마침내 메이저리그 선수가 될 기회가 찾아온다.
그러나 조던은 그 기회를 ‘모욕’으로 여겼고 긴 갈등 끝에 거절했다.
자신이 실력으로 그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4년, 메이저리그는 파업으로 인해 시즌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고, 사무국과 선수노조의 갈등은 다음 해까지도 이어졌다.
급기야 구단주들이 ‘대체선수’ 투입까지 구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조던 역시 파업한 메이저리거를 대체할 인력 중 하나로 거론되었던 것이다.
현역시절 NBA 선수협회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었던 조던은 메이저리그 선수협회가 어떤 입장인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몇차례 시카고 불스 훈련 체육관인 베르토 센터를 찾아 자신을 점검한 조던은 결국 야구 은퇴를 결심한다.
그리고 에이전트(데이비드 포크)와 상의 끝에 팩스를 보냈다. “I'M BACK.”
조던이 반가웠던 시카고 불스
개인적으로는 조던의 시카고 불스만큼이나 1993-1994시즌의 시카고 불스도 정말 좋아했다.
조던이 떠난 뒤 모두 시카고가 종이호랑이 신세가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잘 정돈된 전력을 보이며 55승 27패를 기록했다.
스카티 피펜은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등 팀내 거의 모든 부문에서 선두를 차지하며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1993-1994시즌 피펜 이후 25년 간 이 다섯개 카테고리에서 팀내 1위를 차지한 선수는 케빈 가넷, 르브론 제임스, 야니스 아테토쿤보 뿐이었다.
그러나 좋은 성적 뒤에는 시한폭탄이 언제든 터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딱 누군가 불만 붙이면 금방 터질 것 같았다.
우선 호레이스 그랜트는 공공연히 시즌이 끝나면 팀을 떠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구단이 얼마를 요구하든 듣지 않을 것이라며 말이다. 가장 큰 이유는 구단 수뇌부와의 갈등 탓이었다.
그랜트는 1993-1994시즌이 끝나자마자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했는데, 이 때문에 시카고가 올랜도의 템퍼링 의혹을 제기하며 NBA 사무국에 공식적으로 조사를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 템퍼링이 발각되면 100만 달러 벌금이었는데, 제리 레인스도프 구단주는 “어떤 짓을 하든 그랜트는 못 잡을 것 같다”는 것을 확인한 뒤 템퍼링 조사 요청을 철회했다.
이 시즌에 NBA 올스타가 된 BJ 암스트롱도 필 잭슨 감독의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싶어했지만, 수비와 안정성을 불안해했던 잭슨 감독은 암스트롱의 비중을 제한했다.
피펜은 토니 쿠코치에게 불만이 있었다.
쿠코치는 제리 크라우스(2017년 작고) 전 단장의 야심작이었다.
크라우스는 시카고 단장이 된 이래 늘 피펜 스타일의 크고 잘 달리며 올-어라운드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를 선호해왔지만 성공한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유럽에서 발견한 선수가 바로 쿠코치였는데, 그는 ‘백인 매직 존슨’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장신(210cm)에 볼 컨트롤이나 패스, 득점력이 출중한 선수였다.
피펜은 팀 우승의 일등공신인 자신 대신 쿠코치가 중용되는 것을 못 마땅히 여겼다.
자신보다 연봉이 높은 것도 말이다.
실제로 그 질투심과 자존심이 폭발해 경기를 그르칠 뻔 했던 사건도 발생했다.
1994년 NBA 플레이오프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 1.8초를 남기고 투입을 거부한 것이다.
필 잭슨 감독이 마지막 슛을 자신이 아닌 쿠코치에게 맡겼기 때문이었는데, 이로 인해 피펜은 오랫동안 함께 해온 ‘쓰리 핏(3연패)’ 멤버들에게도 실망을 사고 말았다.
마침 크라우스 단장이 피펜에게는 통보없이 이런저런 트레이드를 알아보다가 미수에 그친 것도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특히 시애틀 슈퍼소닉스 숀 켐프와의 트레이드 설은 국내 신문에서도 거론될 정도로 유명한 소문이었다.
당시 조지 칼 감독은 피펜을 굉장히 원했던 반면 필 잭슨은 켐프를 좋아하지 않았다.
켐프가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녹아들 지 우려됐기 때문이다.
반면 당시 NBA 최고의 수비팀 중 하나였던 시애틀이 피펜을 영입했다면 게리 페이튼-스카티 피펜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압박 수비 라인업을 구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됐든 이 트레이드는 성사가 되지 않았지만, 피펜은 자존심에 금이 간 상태였다.
1994-1995시즌을 시작할 무렵에는 피펜의 이러한 분노가 더 커진 상태였다.
우선 호레이스 그랜트를 끝내 잡지 못했다는 점이 서운함을 키웠다.
추가적으로 존 팩슨, 스캇 윌리엄스, 빌 카트라이트 등도 팀을 떠났다.
두번째로 피펜은 자신의 연봉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란 점 때문에 팀을 떠나고 싶어했다.
피펜은 두 시즌 연속 올-NBA 퍼스트팀, 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올랐지만 정작 연봉(222만 달러)은 NBA 89위에 그쳤다.
1995년 올스타 선수 중에서는 24명 중 19위, 시카고 불스 안에서도 겨우 5위였다.
마지막으로 크라우스의 ‘남 탓’도 피펜의 화를 키웠다.
시카고는 1994-1995시즌을 앞두고 슈팅가드 론 하퍼를 영입했다. 피펜의 적극적인 스카우트가 원동력이 됐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긴다. 하퍼의 무릎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것.
‘루머’에 불과하지만 시카고는 직전 시즌 활약만 보고 하퍼에 대해 메디컬 테스트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퍼는 1993-1994시즌, LA 클리퍼스에서 75경기(38.1분) 평균 20.1득점을 기록했다.
그런데 1994-1995시즌에는 공격과 수비 모두 기대했던 기동력이 나오지 않았고 그 이유는 바로 무릎이었다.
크라우스는 “피펜이 영입하자고 해서 영입했는데 이게 무슨 꼴이냐”라며 대놓고 비방했고, 피펜은 “그게 왜 내 잘못이냐”라며 억울해했다는 후문이다.
시카고는 이처럼 엉망인 분위기 속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게다가 카트라이트, 그랜트의 이적으로 리바운드와 골밑 수비도 엉망이 된 상황. 종종 피펜이 하킴 올라주원을 막는 등 전방위로 애쓰는 장면이 연출될 정도로 팀 전력이 악화됐다.
심지어 홈에서 LA 클리퍼스에게도 패했는데,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나 역시도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 팀은 1986년 이후 처음으로 5할 아래 승률에 그치고 있었다.
필 잭슨 감독은 시즌 시작 후 “이 팀은 50승도 거둘 수 있고, 30승에 그칠 수도 있는 팀”이라며 불안감을 내비췄는데, 결국 전력과 분위기를 모두 잃으며 하락세를 거듭했다.
피펜은 시간이 거듭될 수록 트레이드를 더 강력하게 요청했다.
스스로 LA 클리퍼스에 본인을 받아달라고 연락을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마침 구단주도 MLB 파업을 신경쓰느라 농구단과 피펜에 더 신경을 못 썼던 상황이었고, 피펜의 섭섭함은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심판에게 과하게 항의를 하는가 하면 경기 중 의자를 발로 차고 아이스박스를 집어던지는 등 리더답지 못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마침, 딱 그 시점에 조던이 복귀했는데, 그의 복귀로 모든 것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더 이상 피펜의 돌발행동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피펜도 기자들의 질문공세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었다.
조던의 복귀 시도
"I'M BACK" 팩스가 뿌려지기 직전까지는 정말 다양한 루머가 있었다.
'복귀설'인데도 그 시기 국내 스포츠 신문은 물론이고 종합지에도 비중이게 다뤄질 정도였다.
나는 그때 고등학생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현관 앞에 놓여있던 조간신문을 주워 스포츠 쪽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또 학원가기 전에 AFKN에서 해주던 CNN 뉴스를 꼭 확인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대체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켜놓고 ‘존버’하다보면 조던의 소식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기다렸던 것이다.
실제로 그러다 정말로 조던이 포착되던 날에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처음에는 조던이 구단의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으로 시작했는데, ‘복귀’로 굳혀지기 시작하면서 연습체육관에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조던은 커튼을 쳐놓고 비밀리에 훈련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복귀 결심을 내리기에 앞서 조던의 기량을 확인시켜준 인물이 있는데, 바로 BJ 암스트롱이었다.
훗날 암스트롱은 조던이 은퇴기간 중에도 농구를 완전히 잊지 못했다고 인터뷰했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조던의 첫 복귀를 다룬 《SECOND COMING (샘 스미스 저)》라는 책에도 나온다.
예를 들어 조용한 공간에 초대해 농구계 동향을 물어보는 식이었는데 “지금 젊은 친구들 중에 제일 잘 하는 선수가 누구냐”, “라트렐 스프리웰이 그렇게 잘하냐”라는 질문이었다. (조던은 절친 로드 히긴스에게도 이런 질문을 곧잘 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스프리웰을 보러 간 적도 있었다. 참고로 히긴스는 훗날 ‘구단주’ 조던에 의해 샬럿 호네츠 감독으로 고용되기도 했다.)
또한 복귀를 앞두고는 BJ 암스트롱에게 새벽 6시까지 보자고 한뒤, 1대1을 청하기도 했는데 조던은 이 대결에서도 10-7로 이긴 것으로 알려졌다.
더 놀라운 건 BJ 암스트롱은 농구 복장을 갖춰 입었지만, 조던은 평상복이었다는 것이다.
1년 여 만에 가진 NBA 선수와의 1대1 대결을 여유있게 마친 조던은 그 길로 나이키에 전화해 “내 운동화 좀 챙겨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그는 NBC 방송국 대표에게도 전화해 자신의 복귀와 관련해 협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에이전트가 한 일이지만, 예들 들어 복귀 기념 독점 인터뷰에 대한 출연료, 광고 수익 등이었다.
당시 NBC는 조던이 돌아오는 것을 굉장히 반겼다는 후문이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중계권까지 갖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만일 조던이 국가대표로 나선다면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행복회로를 돌렸던 것이다.
하지만 조던은 올림픽 출전은 그 무렵부터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사생활이 없는 대회’라는 이유였다.
샐러리캡 계산은 어렵지 않았다.
조던의 복귀를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
구단 입장에서는 필요하다면 빚이라도 내서 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마침 조던은 은퇴 시점에도 계약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단 1경기도 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400만 달러를 받아가고 있었다.
시카고는 복귀 시기와 맞물려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26승 29패까지 떨어졌던 팀은 2번의 3연승으로 34승 31패까지 올라섰다.
3월 17일 밀워키 벅스와의 경기는 피펜의 원맨쇼(27득점 11리바운드 6어시스트 8스틸)에 힘입어 87-86으로 이겼다.
피펜의 종료 직전 원 핸드 덩크로 거둔 극적인 승리였다.
→ 피펜의 팬이라면 이 경기는 하이라이트로라도 보면 좋을 것 같다.
https://youtu.be/yywTd4IbwGE
마침내 복귀
인디애나 페이서스 홍보팀장 데이비드 배너는 인디애나 지역지 기자로 8년간 일하다 1990년대 중반에 구단에 합류했다.
2000년대 초반 그와 몇 차례 서신을 주고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그는 인디애나를 ‘농구의 가장 이상적인 인프라를 갖춘 도시’라 소개했으며, 페이서스에 대해서도 굉장한 자부심을 보인 바 있다.
오랜 경력의 그가 꼽은 인디애나 프랜차이즈 최고의 이벤트 중 하나는 1995년 3월 19일 열린 인디애나와 시카고의 경기, 바로 마이클 조던의 복귀전이다.
배너 팀장은 “이렇게 외부 기자들이 많이 온 건 처음이었다”라고 놀라워 했다.
기자만 400명이 왔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보안요원들이 투입됐다.
조던이 이날을 복귀전으로 잡자 NBC도 기다렸다는 듯 중계일정을 바꾸었다.
또 잔여 시즌 시카고 불스 경기 티켓이 모두 팔려나갔다.
3월 25일 애틀랜타 호크스 전은 매진이 안 된 상태였지만, 1,800장이 마저 팔려나간 뒤 암표 전쟁이 시작됐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도 2,000장을 더 팔았다.
인디애나도 그 열기는 마찬가지였다.
뱅커스 라이프 필드하우스가 오픈하기 전, 인디애나는 마킷 스퀘어 아레나를 홈 구장으로 쓰고 있었는데 티켓은 모두 팔려나갔다.
이날 오전 조던은 동료들과 함께 하지 않고 개인 전용기를 이용해 이동했다.
오전 8시부터 개인 훈련을 시작했는데, 오로지 NBC만이 취재를 허락받아 그의 훈련을 취재했다.
샘 스미스 기자는 저서에서 “당시 조던과 함께 이동한 개인 경호원만 6명으로 경계가 삼엄했다”라고 쓰기도 했다. (조던은 은퇴 이전에도 개인 경호원을 따로 두었는데, 이를 곱지 않은 시선을 보는 인물도 있었다. 그는 자녀들의 학교 보안 시스템도 본인 돈으로 개선하는 등 개인 안전에 신경을 꽤나 많이 썼다.)
NBC는 조던의 레지 밀러를 상대로 야투를 넣는 장면을 몇 차례에 걸쳐 보였지만, 진짜 백미는 그 뒤에 나왔다.
상대 센터 릭 스미츠의 공을 가로채 코트를 질주한 조던은 특유의 자세로 레이업을 성공시켰다.
당시 어린 마음에 덩크로 연결되지 않은 것은 아쉬웠지만, 그 레이업 장면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를 비롯해 여러 매거진과 신문사에서 대문짝만하게 실었을 정도로 상징적이었다.
그러나 복귀전 최종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19득점 6리바운드 6어시스트 3스틸. 28개의 슛을 시도해 21개를 놓쳤다.
28개의 슛은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시도였다. 감이 안 좋고 체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이해했는지 피펜은 4쿼터 결정적인 순간 동점을 만들 수 있는 슛을 조던이 아닌 암스트롱에게 맡겼는데, 마침 그게 들어가면서 경기는 연장으로 향했다.
경기는 96-103으로 인디애나가 이겼다.
한 경기였지만, 많은 이야기거리를 남겼다.
비록 팀은 졌지만, 이 경기는 시카고 지역내 60%가 넘는 가구가 시청했을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별개로 조던의 기량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는데, 이 경기가 1993년 6월 NBA 파이널 6차전 이후 첫 공식전이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 다른 한편으로는 슛을 너무 많이 던졌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조던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며 자신있어 했다.
실제로 조던은 바로 다음 경기였던 보스턴 셀틱스 원정경기에서 26분만 뛰고도 27점을 올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중 나온 스카티 피펜과의 콤비 플레이가 백미였다.
덩크슛도 나왔는데 전성기처럼 높이 날아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하이라이트로 방영되기에는 충분했다.
시카고는 124-107로 승리를 거두었다.
국내에서는 밤에 NHK 위성방송을 통해 방영됐던 이 경기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던 경기였다.
조던이 최고의 실력을 발휘해온 보스턴 가든에서 치른 마지막 경기였고, ‘왕년의 라이벌’ 도미니크 윌킨스와의 재대결로도 관심을 끌었다.
비록 페니 하더웨이, 샤킬 오닐과 처음으로 대면했던 3월 24일 올랜도 매직 전은 부진했지만 조던은 애틀랜타 전 위닝샷(32득점), 뉴욕 닉스 전 위닝 어시스트 + 득점 기록(55득점) 등으로 자신이 점차 감각을 찾아가고 있음을 입증했다. (조던은 55득점 기록 후 존 스탁스에 대해 “날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지 잊은 거 아닌가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뉴욕 전은 수요일 밤 SBS를 통해 한 시간 분량의 하이라이트로 국내에 방영되었다.)
몇 가지 문제점들
그러나 조던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못했다.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는 조던 본인이었다.
오랜 공백을 뒤로 하고 복귀를 위해 급하게 체중을 줄이고 훈련에 임하다보니 체력이 전과 같지 않았다.
복귀후 가진 17번의 정규경기에서 그는 단 2경기를 제외하면 모든 경기를 30분 이상 소화했다.
40분 이상 뛴 경기도 10번이나 됐는데, 필 잭슨 감독이 빼려고 해도 원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오래 머무른 것과는 달리 후반전 득점이 저조했는데 이는 플레이오프에서도 문제가 됐다.
피펜도 “아직 스텝을 되찾지 못했다”고 말했으며, 누군가는 ‘조던이라는 명성이란 감옥에 갇힌 전설’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 표현이 더 싫어서 무리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두번째는 어색함이다.
조던은 불스 선수들을 정확히 몰랐고, 불스 선수들도 조던을 몰랐다.
피펜, 암스트롱, 윌 퍼듀 등은 조던의 성향을 알았지만 다른 선수들에게 조던은 그저 ‘농구를 엄청나게 잘했던 슈퍼스타’였다.
말 그래도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 몰랐던 것이다.
일례로 그 시즌 3점슛 성공률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던 스티브 커는 조던 복귀 후 거의 슛을 넣지 못했다.
자신에게 패스가 안 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운함이 커져만 갔는데 섣불리 조던에게 “패스해달라”라고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나 필 잭슨 감독이 “가서 직접 말해보게”라며 조언을 했고, 조던도 설명을 들은 후 납득했다는 후문이다.
조던 복귀 후 주춤하던 스티브 커의 3점슛 성공률은 덕분에 다시 상승세를 탔고, 17경기에서 그가 기록한 3점슛은 60%(8.4득점, 58.6%)에 육박하는 확률을 기록하게 됐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리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 조던도 나름대로 보여주고 싶은게 있다 보니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예전처럼 리바운드나 골밑 수비가 잘 되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그 스트레스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고, 승부욕 강한 조던의 갑작스런 질책에 선수들도 당황하는 일도 있었다.
어색함의 대상은 선수만이 아니었다.
시카고 불스는 1994-1995시즌부터 유나이티드 센터를 사용했는데, 조던은 이 체육관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실제로 조던은 원정경기에서 평균 31.6득점(야투 44.1%)을 기록했지만 홈에서는 21.6득점에 그쳤다. 야투 성공률도 36.7%였다.
자신이 오랫동안 뛰어온 체육관에서는 펄펄 날았지만 유독 유나이티드 센터에 녹아들지 못해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 시카고는 잔여경기에서 13승 4패를 기록해 동부 5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상대는 젊은 다크호스 샬럿 호네츠. 상대적으로 경험은 적었지만 알론조 모닝과 래리 존슨의 높이와 파워는 시카고를 고전케 했다.
설상가상으로 토니 쿠코치가 당시 세르비아-크로아티아 간 내전으로 경기에 집중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카고는 2차전을 농락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1라운드를 3승 1패로 마친 이들은 마침내 올랜도 매직과 대적하게 됐다.
45번 대신 23번
미국시간으로 1995년 5월 7일 열린 올랜도와 시카고의 1차전은 올랜도가 94-91로 이겼다.
당시 기준으로 시청률 기록을 세웠던 이 경기는 아직까지도 내게 충격적으로 남아있는데, 조던이 가장 조던답지 않았던 경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오랜만에 돌아와 저조한 슛 성공률을 기록하고 부진하더라도 팬들에게는 승부처가 되면 조던이 뭔가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경기는 달랐다.
4쿼터에는 중요한 자유투를 놓치는 등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던 것이다.
자유투 2구 모두 실패 후 바로 3점 플레이를 완성시켜 만회하긴 했지만, 올랜도의 젊은 기세에 시카고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종료 10초전, 그는 닉 앤더슨에게 공을 가로채기 당했고 올랜도는 곧장 속공을 통해 흐름을 잡았다.
앤더슨이 만든 속공 찬스를 덩크로 마무리한 선수는 다름 아닌 호레이스 그랜트.
그렇기에 시카고 팬들 입장에선 더 속이 쓰렸을 것이다.
타임아웃 후 조던은 피펜에게 공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실책을 범했고 팀은 그렇게 중요한 1차전을 내줬다.
조던은 19점을 기록했지만 8개의 실책도 함께 남겼다.
경기 후 그는 “내 실수다. 오늘 패배는 내 책임이다”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런데 닉 앤더슨이 팀 연습 후 기자들을 앞두고 큰 말실수(?)를 한다.
“28~29살 때의 조던과는 다르다. 은퇴 전에는 빠르고 폭발적이었지만 지금은 23번일 때만큼 샤프하지 않았다. 같은 동작을 하지만 23번과는 달리 지쳐보였다.”
그렇다. 복귀 후 조던의 등번호는 45번이었다.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등번호(23번) 대신 다른 등번호를 택했던 것이다.
45번은 자신의 형이 사용했던, 그리고 본인이 어린 시절 사용했던 등번호였다.
이 말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조던은 2차전에서 23번을 달고 등장해 모두를 깜짝 놀래켰다.
이는 팀 동료도, 기록원도, 구단 관계자도 모르는 일이었다.
유일하게 이를 알고 있었던 인물은 시카고 불스 장비 담당 매니저였던 존 리그마노우스키였는데, 그가 조던에게 “나에게 23번 유니폼이 남아있다”고 말한 것이다.
조던은 비밀리에 다른 유니폼을 입고 나섰다.
2차전에서 조던은 38득점 7리바운드 4스틸 4블록으로 경기를 휘저었다. 팀은 104-94로 승리했다.
1차전서 부진했던 피펜도 22점으로 승리를 거들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리그마노우스키는 “내가 부추겼다”라고 돌아봤다.)
기자들에게는 훌륭한 스토리라인이 된 반면, 리그 사무국은 난리가 났다.
당시만 해도 트레이드와 같은 케이스가 아닌 이상, NBA는 시즌 중 등번호 교체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기록 프로그램 및 데이터베이스 세팅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가 첫번째였고, 라이선스 문제도 있었다.
사무국은 구단측에 조던이 처음 등록한 45번을 쓰지 않는다면 경기마다 벌금을 물리겠다고 했지만 구단이 그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조던은 3차전 40득점, 5차전 39득점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23번도 결국 시카고를 구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샤킬 오닐 때문이었다.
빌 웨닝턴, 윌 퍼듀, 룩 롱리로는 오닐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리즈는 2승 4패로 끝났고, 조던은 정말 오랜만에 자신이 뛴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패배를 맛보았다.
2015년 12월 22일, 호레이스 그랜트는 SNS 메신저인 ‘라인’을 통해 주선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이클 조던과 내 친정팀인 시카고의 동료, 친구들을 이긴 것은 내 커리어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그동안 플레이오프에서 조던과 불스를 이긴다는 건 불가능처럼 여겨졌기에 그 승리는 엄청난 성과라 할 수 있다. 정말 기분 좋았다. 비록 조던이 복귀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지만, 코트에서 느껴지는 마이클 조던의 존재감은 전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반대로 데니스 스캇은 《FACING MICHAEL JORDAN》이란 책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의 승리는 잠자는 거인을 깨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다음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조던과 시카고는 우리를 스윕(4-0) 해버렸다.”
실제로 조던은 시리즈 후 “나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팀을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겠다”라고 선언했고, 오랜 트레이너 팀 글로버와 함께 ‘되찾기’ 훈련에 돌입했다.
구단에는 “파워포워드를 꼭 영입해달라. 우리는 리바운드가 약하다. 그리고 피펜이 남아있어야 한다”라는 주문을 남긴 채.
>> 다음 편에 계속
글=손대범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430&aid=0000000820
재미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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